작품 속 떠나는 여행 • July 13, 2026
이 게임은 《스탠리 패러블》로 하루아침에 전설이 된 개발자, 데이비 리든(Davey Wreden)이 들려주는 '초심자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게임 속에서 데이비는 '코다(Coda)'라는 이름의 한 개발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코다는 처음에는 소박한 습작을 만들며 실력을 기르다가, 우연히 어떤 버그를 발견한 뒤 깊은 영감을 얻게 됩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실험적 게임들을 개발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게임을 어디에도 배포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우리는 그의 존재조차 알 수 없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데이비는 사라진 이 천재 개발자를 세상에 소개하고 싶다며, 그의 게임들을 무단으로 가져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코다의 게임들은 언뜻 보면 기괴하고 이상합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요소들이 가득하며, 오직 개발자의 시선에서만 보일 법한 숨겨진 장치들이 많습니다. 4시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한다거나,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한참 동안 올라야 하는 등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순간도 존재합니다.
그도 그를 것이, 이 게임들은 타인에게 팔기 위한 것도, 플레이어를 배려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개발자 본인의 자기만족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 게임. 그렇기에 우리는 나레이터인 데이비의 평론을 들으며 게임에 숨겨진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데이비의 평론 없이는 우리는 코다의 게임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게임을 만드는 법은 아주 단순해 보입니다. 뛰어난 모델링 기술도, 아름다운 음악도, 완벽한 코딩 능력도 필요 없습니다. 코다의 게임에는 그 모든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저 '만들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게임은 완성됩니다. 플레이하기 조금 어렵더라도 데이비 같은 평론가가 친절하게 소개해 줄 테니 상관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게임을 만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코다는 게임 속에 기묘한 메시지들을 심어두기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소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나타냅니다. 타인과 소통하려 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반대로 진실한 소통을 포기하고 적당히 맞춰주면 사람들은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소통을 단절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라 소통해야만 하니까요. 이 모순 속에서 게임 속 메시지는 점차 명확해집니다. 바로 게임을 만들기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절규였습니다.
코다는 왜 처음과 달리 게임 제작을 고통스러워했을까요? 그 힌트는 역설적이게도 데이비의 말 속에 있었습니다.
데이비는 게임을 통해 코다가 소통에 두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주변 사람들에게 코다의 게임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의 좋은 평가를 전해주면 코다의 두려움이 치료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고, 데이비는 코다에게 "걱정할 필요 없어. 모두가 네 게임을 좋아해"라고 위로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코다도 좋아했을까요?
코다가 왜 그토록 괴로워했는지는 그의 마지막 게임에서 밝혀집니다.
우리는 데이비의 설명이 없으면 코다의 게임을 알지 못할 것이라 믿었지만, 사실 데이비 역시 코다의 게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데이비는 그저 자신의 입맛대로, 자신이 생각한 프레임에 끼워 맞추어 코다의 게임을 평론이라는 이름으로 찢고, 뭉개고, 덧칠해 누더기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결국 코다는 마지막 게임을 통해 데이비에게 비수를 꽂습니다. 더 이상 내 게임에 아무 말도 덧붙이지 말고,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말라고 말이죠.
그제야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게임을 만드는 데에는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요.
코다에게 가장 이상적인 게임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전, 오직 자신의 컴퓨터 속에만 살아 숨 쉬던 그때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기에 타인과 소통하고 싶었고, 데이비라는 둘도 없는 친구를 만나 처음으로 게임을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게임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직 데이비의 해석이라는 필터를 거쳐서만 게임을 수용했습니다. 심지어 그 데이비마저 게임을 오독(誤讀)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낯선 사상과 해석들이 '개발자의 의도'라는 이름으로 멋대로 박제되고 공유되는 상황. 소통을 두려워하던 코다에게 이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스트레스였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의도치 않은 '나쁜 생각'이 내 의도인 것처럼 퍼진다면, 그걸 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결국 이 관점에서 보면 게임은 온전히 개발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플레이어와 평론가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게임을 만드는 법이란 코딩을 잘하거나, 음악을 잘 만들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스토리를 잘 쓰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어 순수한 의지를 가지는 것조차 아닙니다. 바로 '내가 만든 세계가 타인에게 전해질 때 생기는 파장과 오해를 감당할 각오', 즉 사람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 각오가 되어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게임을 만드는 행위가 결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론가와 대중의 날선 평가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결국 창작의 불씨가 꺼져 사라지게 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코다만의 순수한 게임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코다의 게임은 영원히 그의 컴퓨터 속에만 갇혀 있어야 마땅했을까요?
코다의 게임은 데이비의 독단적인 편집과 나레이션을 거쳐 《더 비기너스 가이드》라는 하나의 완성된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역설적이게도 전 세계 수많은 게이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 게임이 '평론가의 오만이 어떻게 순수한 창작의 즐거움을 앗아가는지' 비판하는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데이비의 왜곡과 편집이 있었기에 수많은 대중이 이 게임에 감동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데이비의 가이드 없이 코다의 외롭고 기괴한 게임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이 게임은 평론의 무용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평론과 해석 역시 게임이라는 하나의 예술을 완성해 나가는 필연적인 과정임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게임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개발자? 플레이어? 평론가? 사실 그 누구의 것도, 혹은 모두의 것이 아닐까요.
이 게임이 말하는 '비기너(Beginner, 초심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창작의 고통을 겪는 개발자? 타인의 창작물을 소비하는 플레이어? 그것을 해석하는 평론가? 어쩌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서툰 우리 모두가 '비기너' 아닐까요.
자신의 게임이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배워야 하는 개발자처럼, 플레이어와 평론가 역시 이 게임이 온전히 자신들만의 유희 거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코다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거대한 상업 자본 아래로 들어가 대중을 위한 게임을 만들고 있을까요? 아니면 창작의 상처를 안고 게임 개발을 영영 접어버렸을까요?
어쨌거나 데이비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는 별개로, 우리가 '코다'라는 창작자가 가졌던 고뇌와 흔적을 기억해 주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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